[yhmt. player]세상의 문을 열어준 나의 열쇠, 축구

2022-06-21


들어가며ㅣ이른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특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N잡러’ 일 때가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본업으로 두고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나쯤은 진행하거나 프리랜서 신분으로 ‘나의 소속은 나’라고 정의하며 여러가지 일을 자기주도적으로 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2020년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본캐’와 ‘부캐’라는 밈(meme)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그리고 여기, 어린시절 여자축구선수를 꿈꿨던 사람이 있다. 그게 본캐가 되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게 ‘스포츠인’의 길을 갈고 닦았다. 아마추어 축구선수이자 체육교사, 유튜버, 싱어, 버스커 등 다양한 모습으로 시간을 쪼개어 keep going 중인 전해림 님을 만났다. 그녀의 삶에서 축구란 어떤 의미일까.



SIDE A :
모든 길은 축구로 통한다.



Q.
어린 시절, 축구선수를 꿈꾸셨다고 들었어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가로막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 컸죠. 당시에 여자 축구선수의 길을 선택하고, 게다가 성공하기란 더 힘들다는 이유로요. 지금보다도 훨씬 인지도가 적고 활성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축구를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모님은 학업을 계속해 나가기를 원하셨던 거죠.



Q.
인하대학교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여자축구동아리 인하윅스(INHA-WICS)를 만들었고, 이어서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연맹’까지 창설했죠. 게다가 국내 최대 여자축구 커뮤니티인 ‘여축모’를 만드시기도 했고요. 각각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A.
순서 상으로는 첫번째가 인하윅스, 두번째가 여축모, 세번째가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 연맹이었죠. 


① 인하윅스(INHA-WICS) : 체육교육과에 진학하면 1인당 한 종목씩 운동 동아리를 들어야 했어요. 학교에 여자축구부가 없어서 1학년 때는 배구부에 들었었죠. 그래서 학교 밖에서 여성 축구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대학 동호회들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대회들이 많이 열리더라고요. 그 때, ‘나도 우리 학교 대표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게다가 당시에 배구부에서 늘 물 떠오는 일, 응원하는 일, 매니저 역할만 하는 게 너무 싫기도 했죠.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축구를 함께 할 여학우들을 찾았어요. 그런데 하루만에 열 명 넘게 문자를 보내오더라고요. 그렇게 체교과 동기와 함께 2013년 4월에 인하윅스를 만들게 된 거죠.

② 커뮤니티 ‘여축모’ : 그렇게 1년 정도 활동을 했을까요. 제가 학교에서 ‘창업 특강’ 수업에서 ‘소셜미디어 활용’에 대한 내용을 듣고 보니 여자축구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 프로축구, 실업축구팀들 팬 카페만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대회 정보도 공유하고, 팀 정보도 서로 교류하면 좋겠다 싶었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하나 개설했고, 처음엔 지인들로 시작해서 꾸준히 팔로워가 늘었어요. (현재 전해림 님이 운영중인 페이스북 페이지 ‘여자축구의 모든 것’ 팔로워는 약 1.4만명)

③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연맹 : 그러다 2015년에 교사 임용이 됐는데, 대학 여자축구동아리는 계속 많아지는데, 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돕는 연합체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당시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여자축구 TF팀’을 만들었는데 제가 대학생 대표 자격으로 참여한 게 큰 계기가 됐죠.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흘러가니, ‘우리가 먼저 뭉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 연합으로 WUFA라는 단체를 결성했어요. 그렇게 회원들을 모집하다가,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연맹’을 만들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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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림 님의 유튜브 <N꾸림-N을꿈꾸는이야기>를 보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스포츠이고, 그 중에서도 ‘축구’라는 종목이예요. 해림 님이 수많은 스포츠 종목중에 ‘축구’를 특별히 더 애정하는 이유가 있다면?

A.
축구는 일단 공 하나만 있으면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고, 친구와도 패스하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진입이 쉽고요.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잖아요. 그게 곧 축구의 매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골 넣는 맛, 드리블 하는 맛, 팀 플레이를 하는 맛 등등 축구 안에는 정말 다양한 맛이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어릴 때부터 쭉 보아왔던 게 축구이고, 저도 월드컵 세대라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거죠. 늘 유행이지만 끝나지 않을 유행이 바로 축구라고 생각해요.



Q.
11대 11 풀코트 축구경기를 할 때, 해림 님이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은 무엇이고 또 어떤 포지션들을 소화하실 수 있나요? 더불어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있다면?

A.
스물 한 살에 동호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공격수를 맡았어요. 처음에는 올라운더로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포워드 자리에서 훈련을 하다보니 지금은 이 자리가 가장 편해요. 가장 역량을 잘 펼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격수나 미드필더까지는 소화할 수 있는데, 솔직히 수비를 보게 되면 제가 많이 놓치더라고요(웃음).
사실 제가 축구를 자주, 직접 하지만 중계를 보는 것은 손에 꼽거든요. 그래도 추구하는 스타일을 꼽자면 손흥민 선수죠. 마음만은 쏘니처럼 속공 상황에서 확실히 공격작업을 매듭지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요, 저는 손흥민 선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축구를 하면서부터, 더 넓은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가게 될 수 있었어요.



Q.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이 2011년부터라고 어림잡아도, 벌써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어요. 그 때와 지금,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해림 님이 얻게 된 것들도 조금씩 변해왔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A.
축구를 하면서부터, 더 넓은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가게 될 수 있었어요. 축구를 하기 전에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면, 그 개구리에게 축구공 하나가 주어진 거죠. 그러면서 이 개구리가 비로소 세상으로 나가게 된 거고요(웃음). 축구팀 주장을 하면서 대인관계를 쌓는 법도 자연스레 배웠고, 대표로 나서서 여러 연맹들의 기성세대 분들과 일하는 방식도 알게 됐고요. 일을 벌이고 이끄는 것,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 영상 편집 등의 스킬들도 모두 축구 아니었으면 못 했겠죠. 그래서 제가 해왔고, 해 나갈 모든 일들의 파이프라인 중심에는 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남성 위주의 종목으로만 여겨져왔었던 종목이라 ‘축구를 잘하는 여자 체육선생님’ 캐릭터는 흔치 않잖아요. 학생들과의 흥미로웠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A.
일단 맞아요. 그거 정말 맞아요! 축구를 잘하는 여자 체육 선생님이 학교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저는 느껴요. 보통 여자 체육 선생님들이 남학생들을 지도하는 걸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축구팀 유니폼을 자주 입고 다니거든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고, 바르셀로나 유니폼도 입고요. 게다가 축구를 즐겨 하기도 하고 잘하는 편이다보니 남학생들과도 자연스러운 유대를 쌓을 수 있게 됐어요. 

여학생들의 경우, ‘우리 선생님도 여자인데 축구를 저렇게 좋아하고 심지어 잘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운동장에서 공을 차 보려고 해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여학생들도 막상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고, 함께 하는 사람도 없으니 비교적 주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하고 운동에 적극적이니까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 드나봐요. 운동장으로 더 많은 여학생들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SIDE B :
남들이 뭐라고 하든, 돌파하면 그 뿐.



Q.
축구선수를 꿈꿨던 것, 피봇을 했지만 체육전공을 택한 것, 정규직 교원을 포기하고 기간제 교사가 된 것, 그리고 여전히 축구를 하는 것 등- 어릴 때부터 주변의 시선과 반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셨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선택의 이유와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A.
질문들이 다 너무 재미있네요. 사실 제가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것 말고도, 학창시절에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 반대에 부딪힌 경우가 참 많아요. 드럼을 배우고 싶어도 ‘여자는 그런 악기 치는 게 아니다’라고 한다든지,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도 ‘여자애가 무슨 그런 운동을 해’라는 말도 들어봤고요. 그치만 부모님이 보호자였던 때를 벗어나 대학에 진학하고, 선택의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조금씩 돌파해나갈 수 있었죠. 한두 번 반대를 꺾고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다보니 어느 순간 ‘돌파하면 그 뿐’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게다가, 우려하고 반대했던 사람들도 결국 선택 이후에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바꾸더라고요. ‘이 친구는 어차피 내가 말해도 하고 싶은 대로 뚫고 갈 거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두 번 반대를 꺾고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다보니, 
어느 순간 ‘돌파하면 그 뿐’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Q.
일이라는 게, 사실 정의하기 나름이잖아요.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아이와 놀아주는 게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스스로 ‘N잡러’라고 정의했던 분으로써, 해림 님에게 ‘일’이란?

A.
맞아요. 저에게는 일이라는 개념이 꽤 포괄적이예요. 보통 ‘일’이라고 하면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뿌듯함이나 보람으로 돌아온다면 그게 곧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취미도 일이고, 일도 취미인 게 되었죠.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리워드가 생긴다면 그게 곧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죠. 



Q.

어쩌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앞서서 삶의 목표를 위한 ‘하나의 삶의 태도’를 가졌다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해요. 그렇다면 수많은 일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나요?

A.
저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삶의 길목에서 회사를 통해 영향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겠고, 교사로서 아이들이 잘 성장하도록 가르쳐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고요, 혹은 크리에이터로서 콘텐츠를 통해 영향을 줄 수도 있겠죠. 지금은 너무 이상적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인플루언서형 CEO’가 되고 싶어요. 아마 나중에는 교육이나 스포츠 분야 쪽에서 비즈니스를 통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Thanks to :
나를 킵고잉하게 하는 힘, 
(리액션)*



Q.
일상적으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요헤미티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이후에 그것들을 ‘keep going(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가 궁금해요. 플레이어 전해림을 킵고잉하게 하는 것은?

A.
저의 킵고잉 원동력은 리액션이예요. 제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해도 그게 일방향이면 짝사랑인 거잖아요. 영향이라는 건, 그 사람에게도, 저에게도 윈윈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함께 호응하고, 서로 감사를 표하거나 돕고 싶다는 반응들을 통해 윈윈할 때, 저를 더 킵고잉 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고 싶다, 환경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로부터 리액션을 받는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