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mt. player]일요일 밤, 아빠는 테니스 코트에 있을게

2022-07-13




그리고 여기,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글쓰기의 쓸모»를 썼고,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공장을 짓다가 지금은 글을 짓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플레이어 손현 님이 있다. 수많은 라벨을 ‘얻어낸’ 그이지만, 육아를 통해 ‘주는 것’이 일상인 삶을 만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른 아침마다 테니스로 정신을 깨우고, 딸과의 꾀죄죄한 데이트를 위해 집으로 달려가는 사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가 만드는 삶은 무엇을 통해 지속되고 있을까?




Q.
현 님의 두번째 책, «글쓰기의 쓸모» 표지에도 등장하는 테니스 공과 라인. 그만큼 테니스와 손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 싶어요.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테니스를 즐기고 있나요?


A.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아침 일찍 레슨을 받아요. 일요일 저녁에는 세 시간동안 동호인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요. 제가 테니스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을 거예요. 당시 같은 반 친구들 중에 테니스 배우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멋져 보였거든요. 그래서 레슨을 시작했지만, 야외 운동이라 날씨 탓을 하면서 두 달 정도 배우다가 포기했어요. 더불어서, 그 때는 테니스 공 주우러 다니는 게 괜히 싫었던 기억이 나요. 요즘은 공 줍는 게 정말 너무 행복하지만요(웃음). 그래도 성인이 될 때 까지 테니스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고, 다시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레슨을 시작한 지는 만 5년이 되어 가요.



Q.
테니스가 여러 종목들 가운데서도 특히 ‘배우는 데 시간이 참 오래 걸리는 스포츠’라고 알려져 있어요. 혹시 오랫동안 테니스와 함께하시면서 느꼈던 성장의 포인트가 있나요?


A.
흔히들 말하는 ‘퀀텀 점프’라는 게 존재하더라고요. 일요일마다 함께 테니스 게임을 하는 동호인 친구들이 전부 비슷한 시기에 레슨을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게임 진행 자체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었는데, 매 주 레슨을 받고 꾸준히 게임을 하다보니 최근에는 복식 게임을 하다가 ‘이제 좀 게임다워졌다’는 말을 하게 됐어요.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구질의 공들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거죠. 동호인 레벨에서 보자면 아직 중급 정도 턱걸이하는 수준이지만, 분명히 성장을 체감할 수는 있었어요. 





Q.
유독 ‘라켓’을 사용하는 스포츠에는 ‘치다’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는 것 같아요. (테니스를 치다, 배드민턴을 치다, 탁구를 치다 vs. 축구를 하다, 농구를 하다). 많은 라켓 스포츠중에서, 테니스가 삶에 침투한 이유가 있다면?


A.
저도 스쿼시, 탁구,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한 경험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테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야외 스포츠라는 점, 그리고 어느 정도 스케일이 있는 공간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라켓으로 공을 쳐내는, ‘타격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손맛이 가장 적절하다고 느끼기도 했죠. 코트의 사이즈 자체도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서 좋았고요. 게다가 테니스웨어나 액세서리가 주는 매력도 매우 큰 요인인 것 같아요.




A.
테니스 용어에는 무언가 모순적인 말이 있더라구요. 이를테면 득점을 위해 공을 부서져라 치는 ‘서비스
(service)’나, ‘0점’을 뜻하는 ‘러브(Love)’와 같은 말이요. 테니스를 하면서, 이런 모순적인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다면?


Q.
테니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미안합니다(Sorry)’ 예요. 그런데 복식이나 단식 게임을 할 때, ‘나의 실책’인 순간에도 보통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제 경우, 미안해야 할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끔 초보자들 중에 레슨을 대충 받거나, 열심히 게임에 임하지 않는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그 미안함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
현 님이 생각하시기에 테니스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Q.
일단 단식 경기를 할 때와 복식 경기를 할 때 요구되는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입체적인 매력을 갖춘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단식의 경우 개인이 공격과 수비를 비롯한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컨트롤해야 하니, 에너지 소모와 심리적 중압감이 커요. 반면 복식의 경우 협력, 공격자와 수비자의 역할분담 등이 아주 중요해져요. 이처럼 개인 스포츠이자 팀 스포츠라는 점이 매력이죠. 또 하나는, 테니스를 흔히 ‘멘탈 스포츠’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체력이 정말 중요한 거죠. 조금이라도 흥분하거나, 방심하거나, 이기려 들면 반대로 지는 경우도 많아서요. 이처럼 개인 플레이와 팀 플레이, 신체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모두 필요로 하는 입체적인 스포츠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요.




A.
2022 롤랑가로스 오픈이 라파엘 나달의 대회 통산 14회 우승으로 막을 내렸어요. 현 님은 롤모델로 삼거나 가장 응원하는 테니스 플레이어가 있나요?


Q.
예전에 한 번 브런치에 쓴 글 
<오늘의 팡팡 테니스(링크)>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는 로저 페더러를 제일 좋아해요. 지금은 알카라스(*카를로스 알카라스 가르피아 ; ATP투어 최고의 유망주로 부상중인 신예)같은 신성이 떠오르고 있고, 페더러도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요. 신체적인 탁월함보다도 멘탈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참 좋아해요. 어떤 경기에서든 패배한 선수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기도 하고요. (*로저 페더러는 ‘천재의 길과 노력하는 사람의 길 중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플레이를 묘사한 아주 유명한 에세이가 있어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쓴 <Federer Both Flesh And Not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이라는 글이죠. 요헤미티 매거진 독자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요. 특히 테니스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더불어 제가 비행기에서 감명깊게 보았던 다큐멘터리인 <Strokes of Genius(천재들의 스트로크)>도 함께 추천합니다!

아, 라파엘 나달도 좋아해요! 그런데 여전히 로저 페더러의 우아함이 참 좋더라고요(웃음).


▼플레이어 손현 님의 추천 콘텐츠
Federer Both Flesh And Not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Strokes of Genius (천재들의 스트로크)




▲딸과 함께한 손현 님의 일상 사진들(플레이어 제공 사진) ⓒ요헤미티


Q.
현재 육아휴직모드인 아빠라고 들었어요. 반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OECD 비교대상국 중 여전히 최저 수준이라 알려져 있죠. 어쩌면 당연한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음, 아내가 임신하고 아이의 출산을 앞두었을 때부터 육아휴직은 반드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요. 다만 6개월이냐 1년이냐를 고민했죠. 만약 제가 이전 직장에 재직중이었다면 육아휴직을 쉽게 생각지는 못했을 것 같거든요. 복지의 차원이라기보다도, 전 직원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던 작은 곳이라 규모나 책임 차원에서 쉽게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직장에서는 그 부담이 덜 했어요. 무엇보다 팀 리더와 팀원들이 ‘이제 육아휴직도 남성들이 많이 쓸 때가 되었다’ ‘현 님이 선례를 남겨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죠. 그래서 오히려 육아휴직을 결정하기까지 큰 허들은 없었어요.

부부의 입장에서도, 결코 평등할 수는 없지만 ‘공평함’을 추구하고자 해요. 둘 다 일하기를 좋아하고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니 아내가 약 1년 3개월을 주양육자로 살았던 만큼, 저 역시도 1년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주양육자로 살아가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페어 플레이(Fair Play)에 대한 고민인 거죠. 공평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꾸준히 노력해야 겨우 균형이 맞더라고요. 





Q.
테니스와 테넌트(tenant;주도권을 갖는 자)가 같은 어원을 공유하더라고요. ‘주 양육자의 삶’에서 삶의 주도권을 쥐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최대한) 밸런스를 맞추시나요?

A.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웠어요. 일단 삶의 주도권을 쥐려면 육아 교대자가 필요한데, 부부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3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더라고요. 저도 육아휴직 후 두 달 정도는 혼자서 아이를 보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드리고 있어요.

또 하나는 테니스인데요. 아내가 저에게 테니스를 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기로 했죠. 그래서 저에게는 테니스가 단순한 운동시간이 아니라 집을 떠나 코트를 향하는 시간, 레슨이나 게임을 하는 시간까지 하나의 ‘환기’로 작용해요. 어쩌면 짧은 시간이지만 늘 서울숲을 보고, 숲의 풍경이 변하는 것도 확인하면서 생각도 정리되고요. 물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풀리죠. 

오히려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접근해요. 지금은 ‘당연히 주도권을 가지기 어려운 시기’라고요. 다만 ‘내가 적어도 오늘 이것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족하다’ 라고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짬을 내서 육아일기를 쓰는 리추얼 모임도 진행하고 있고, 육아하는 아빠들과 함께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하 '썬파클')이라는 이름의 뉴스레터를 돌아가면서 내보내고 있어요. 여러모로 시간을 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기록도 해 두지 않으면 결국 피곤만 남고 제가 무얼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손현 님(우측에서 두번째)과 썬데이파더스클럽 멤버들(플레이어 제공) ⓒ중앙일보 우상조 기자



Q.
‘아는 아빠들’과 함께 만드는 육아레터 ‘썬데이파더스클럽(이하 썬파클)’, 잘 보고 있어요. 슬로건이 ‘육아일기를 빙자한 성장일기’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지금까지 경험한 성장의 포인트는?

A.
최근에 아이와 둘이서 코엑스에 도서전을 보러 갔다가, 떡뻥(아기들의 간식 중 하나)을 사러 바로 옆에서 열린 베이비페어에 갔어요. 겸사겸사 수유실에 갔는데 생후 50일 정도 되어보이는 신생아 쌍둥이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기저귀는 갈아야하지, 아기들은 울지, 분유도 타야 하지…손이 부족해서 쩔쩔 매고 있는 걸 봤어요. 저도 모르게 ‘아기 한 명은 제가 보고 있어도 될까요’라 말하게 되었고, 잠시 달래어주니 울던 아기가 조용해지더라고요. 우연히 이 경험을 하면서, ‘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고, 예전보다는 육아하는 아빠로서 성장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뉴스레터 썬파클을 내보내면서는, 육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떠도는 정보들로부터 조금은 보호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실제로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공포스러운 말들이 많은데, 아빠들과 함께 고충과 시행착오를 공유하다 보니 연대감도 생기고, ‘우리도 학습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됐고요. 테니스처럼 솔로 플레이를 하다가도 정기적으로 팀 플레이를 하면서 성장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네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테니스와 육아 둘 다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그 레슨의 강도가 인텐시브해야 한다고 봐요. 아마 저도 육아휴직을 쓰고, 주양육자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습득하지 못했을 노하우가 많다고 느끼거든요. 테니스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Q.
요헤미티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지속가능하고 다양성 높은 스포츠 컬처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고 있어요. 요헤미티의 인터뷰에 응해주신것도 이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현 님이 알리고 싶은 스포츠 브랜드가 있다면요?


A.
운동을 모티브로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레디투킥(Ready to Kick)’을 소개하고 싶어요. ‘킥’은 수영이나 축구에서 발로 차는 동작을 뜻하는 동시에 웃음을 참지 못해 터뜨리는 소리이기도 해요.

실은 주양육자로서 먼저 육아를 담당했던 아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걸 차근차근 실현 중인 초기 브랜드예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킥킥 웃을 수 있는 재미와 동기부여를 꾀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이번 여름 첫 아이템은 수영 모자라고 합니다.






Epilogue :
라커룸에서


Q.
일상적으로 ‘많은 것들을 참 잘 설계해나가는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 님을 지속하게 하는, 킵고잉(keep going)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A.
삶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쟁취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계속해서 ‘킵고잉’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렵지, 움직이다보면 관성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상치 못하게 방향이 바뀌고,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어떻게든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상과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2022 by yohemite All rights reserved.
CC-BY-NC-ND